사랑은 서로 공유해야만
우리 스스로가 활짝 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정체성과 상호성에 세 번째 차원,
아리스토텔레스가 암묵적으로만 인정한
한 가지를 보태고자 합니다
바로 이타성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인간다운 덕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펼치는 좋은 삶 전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르누아르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나 혼자 행복한 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한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사랑, 우정, 공감, 배려가 행복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됩니다. 르누아르가 행복과 이타성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이타성’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라는 도덕적인 교훈으로 이해하면 조금 부족합니다.
오히려 의미는 이렇습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라도 타인의 행복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상당히 역설적인 부분입니다.
보통 사람은 행복을 “내가 무엇을 얻느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논리는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소유 → 만족 → 행복
이 아니라,
관계 → 사랑 → 나눔 → 타인의 행복 → 나 자신의 행복
이라는 방향입니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행복에 관한 논의에서 이타주의(altruisme)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 자신의 행복과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아리스토텔레스 → 이타성”이라는 연결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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