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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아르튀르 랭보의 「밤샘(Veillé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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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튀르 랭보의 「밤샘(Veillées)」은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s)』에 수록된 산문시로, I·II·III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랭보 특유의 논리적 설명보다는 감각과 이미지가 서로 겹쳐지는 방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원문은 1886년판 『Illuminations』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키문헌)

아르튀르 랭보 — 「밤샘」(Veillées)

I

C’est le repos éclairé, ni fièvre ni langueur, sur le lit ou sur le pré.
C’est l’ami ni ardent ni faible. L’ami.
C’est l’aimée ni tourmentante ni tourmentée. L’aimée.
L’air et le monde point cherchés. La vie.
— Était-ce donc ceci ?
— Et le rêve fraîchit.

번역

이것은 빛에 감싸인 휴식이다.
침상 위에서든 들판 위에서든, 열병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닌 휴식.

이것은 뜨겁지도 않고 나약하지도 않은 친구다.
친구.

이것은 괴롭히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 사랑하는 이다.
사랑하는 이.

공기와 세계를 굳이 찾아 나서지 않는 것.
삶.

그렇다면 이것이었던가?

그리고 꿈은 서늘해진다.


II

L’éclairage revient à l’arbre de bâtisse. Des deux extrémités de la salle, décors quelconques, des élévations harmoniques se joignent. La muraille en face du veilleur est une succession psychologique de coupes, de frises, de bandes atmosphériques et d’accidents géologiques. — Rêve intense et rapide de groupes sentimentaux avec des êtres de tous les caractères parmi toutes les apparences.

번역

빛은 다시 건축의 들보로 돌아온다.

방의 양쪽 끝에서, 아무렇게나 놓인 장식들 사이로
조화로운 상승들이 서로 맞닿는다.

밤을 지키며 깨어 있는 사람 앞의 벽은
프리즈의 단면들과, 대기의 띠들과,
지질학적인 우연한 지층들이 이어지는
심리적인 연속체이다.

모든 성격의 존재들이 모든 모습들 사이에서 뒤섞이는,
강렬하고도 빠른 감정적 무리들의 꿈.


III

Les lampes et les tapis de la veillée font le bruit des vagues, la nuit, le long de la coque et autour du steerage.

La mer de la veillée, telle que les seins d’Amélie.

Les tapisseries, jusqu’à mi-hauteur, des taillis de dentelle, teinte d’émeraude, où se jettent les tourterelles de la veillée.

La plaque du foyer noir, de réels soleils des grèves : ah ! puits des magies ; seule vue d’aurore, cette fois.

번역

밤샘의 등불과 양탄자는
밤이면 선체를 따라, 그리고 배의 하층 갑판 주위를 흐르는
파도 소리를 낸다.

밤샘의 바다,
아멜리의 가슴처럼.

벽의 중간 높이까지 드리워진 태피스트리는
에메랄드빛 레이스 숲이 되고,
그곳으로 밤샘의 비둘기들이 날아든다.

검은 난로의 철판,
해변의 진짜 태양들.

아, 마법의 우물들이여.

이번에는 오직 하나의 새벽 풍경.


「밤샘」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작품에서 Veillée는 단순히 '밤'이라는 뜻으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프랑스어 veillée에는 밤늦게까지 깨어 있음, 밤샘, 누군가를 지키며 밤을 보냄, 저녁의 모임이라는 여러 의미가 겹쳐 있습니다. 랭보는 바로 이 모호함을 이용합니다. (아르튀르 랭보)

특히 세 부분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I에서는 가장 평온합니다.

C’est le repos éclairé…
이것은 빛에 감싸인 휴식이다.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공기도, 세계도 더 이상 갈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적당한 중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갑자기

Était-ce donc ceci ?
그렇다면 이것이었던가?

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Et le rêve fraîchit.
그리고 꿈은 서늘해진다.

라고 끝납니다.

즉, 완전한 행복을 발견한 것 같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꿈이 식어버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II에서는 현실의 벽이 환상으로 바뀝니다.

밤새 깨어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평범한 벽이 단순한 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심리적인 지층이 되고, 대기의 띠가 되고, 지질학적인 풍경이 됩니다. 현실의 사물이 의식 속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아르튀르 랭보)

그리고 III에서는 방 자체가 바다로 변합니다.

등불과 양탄자가 파도 소리를 내고, 방은 배의 선체가 됩니다. 양탄자와 태피스트리는 에메랄드빛 레이스 숲이 되고, 마지막에는 검은 난로의 철판에서 해변의 태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seule vue d’aurore, cette fois

는 문자 그대로는 “이번에는 오직 하나의 새벽 풍경” 정도이지만, 시 전체를 놓고 보면 매우 강렬합니다.

한밤중의 방 안에서 오히려 새벽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랭보에게 현실은 현실 그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 → 바다 → 숲 → 해변 → 태양 → 새벽으로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래서 「밤샘」은 단순히 잠들지 못하는 밤을 묘사한 시라기보다, 깨어 있는 의식이 현실을 꿈과 환각의 세계로 변환시키는 순간을 보여주는 산문시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Illuminations』의 여러 작품처럼 세 부분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진다기보다, 같은 '밤샘'이라는 제목 아래 서로 다른 세 가지 의식 상태를 펼쳐놓은 작품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르튀르 랭보)

원문은 공개된 1886년판 텍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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