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화가가 그린 그림(바로 위의 그림 )을 보고 누구인지 관심이 생겨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저 그림은 나혜석의 <Scene of Paris>라고 합니다.
나혜석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해선 문외한인 저로서는 우리나라 화가라고 하면 이중섭 화가의 소? 가 생각이 나고, 다른 화가 이름은 선뜻 떠오르지가 않네요......
마네,모네, 고흐, 고갱, 루벤스, 프리다, 클림트,,,,,서양 화가 그것도 옛날 화가에 대해서만 조금 아는 것 같습니다.
나혜석 화가는 누구 일까요?
나혜석(1896년 4월 28일 ~ 1948년 8월 10일)은 대한민국의 화가, 소설가, 패션디자이너, 사회활동가, 역사학자, 교육자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녀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화 여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선구적인 안목과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당시 사회의 여성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했습니다.
나혜석은 조선시대 계열의 양반 신분에서 나와 서양학습과 국내 민족운동에 참여하며 교육과 예술의 발전에 전념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홉달'은 독창적인 화법으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소장과 전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녀는 독립운동의 일원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약골장명석(六骨莊明錫)은 그녀의 예명이었습니다.
나혜석은 여성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 힘썼으며, 국내 최초의 여성 잡지인 "신여성"을 창간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활동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국민소통을 위하여 국내 외에서도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백과사전이 가르쳐주는 나혜석 그녀입니다.
가끔 문화관련 콘텐츠에서 보곤 했던 이름인데 굉장히 앞서나가고 깨어있던 신여성이었던것 같습니다.
나혜석은 그 유명한 1919년 3.1 운동에도 참가하여 5개월간 옥고를 치뤘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화가로서의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첫 유화 개인전을 가졌으며,4월에는 제1회 서화협회전람회에 홍일점으로 유화를 출품하였다고 합니다.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해마다 작품을 출품하여 수상과 특선을 거듭하였습니다.
1931녀에는 도쿄의 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도 입선하였다고 합니다.
1927년에는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일본 정부 외교관 신분이던 남편 김우영과 함께 세계 일주 여행에 올라 파리에서 약 8개월간 머무르면서 야수파 화가 비시에르(Roger Bissiere,1888~1964)화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이어, 유럽 각국의 미술관 순례를 통해서 미술 시야르 넓히고, 미국을 거쳐 1929년에 귀국하였습니다.
1930년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였습니다.
이혼한 뒤에는 그림에만 몰두하였고,1933년에는 종로구 수송동에 여자미술학사를 설립하였습니다.
1934년에는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발표하여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최린(일제강점기 종법사, 도령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정조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나혜석의 화가로서의 활동은 1935년 서울의 조선관 전시장에서 가졌던 <근작 소품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습니다.
1937년 무렵부터 방랑생활에 빠져들었고, 1948년 이혼과 정신장애, 반신불수의 비극 속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하는데, 그녀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녀는 자기자신에게, 그리고 외부적 시대적 환경을 마주하여 솔직하고 진실되고 열정적이었던 신여성의 삶을 살다 간 것 같습니다.
< 행복하게 살다 적절히 장수하다 생을 마감하였다 >하면 좋겠지만 인간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나혜석 앞으로 까먹지않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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